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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상담심리 수업을 마치고

 ‘음악을 통한 자기변형’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상담심리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많은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음악을 이용하고 그 속에서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을까?

한 학기를 마친 지금에도 음악을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음악공연장에 가서 공연자, 작곡가, 지휘자, 악기소리 등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라도 나에게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심지어는 최면을 걸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은 그대로 였다. 어떠한 새로운 느낌도 받지 못했고,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들은 그저 잠을 재우는 수면제였다.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서 하나는 깨달았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듯.

그러나,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배척하지 않고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수업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도 상관없다. 열린 마음은 아닐지라도 꽁꽁 닫아놓고 상대방을 나의 사고에 끼워 맞추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해왔던 나의 상담들 - 입은 상대를 이해한다고 해 놓고서, 상대의 말에서 허점을 찾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 - 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태풍이 불어도 풀은 쓰러질 뿐 꺾이지 않음 -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배려와 수용의 자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실습을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나의 벽들. 내가 만들어 온 수많은 벽 때문에 순수한 충고와 의견을 배척해왔다는 사실을 그래도 지금은 깨달아서 행복하다. 아니, 지금껏 나를 보호해 왔던 벽들을 제거한다는 것이 솔직히 두렵다.

머리의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가슴에 뿌리는 실천의 씨앗이다.

책상 앞에, 또 플래너 앞에 항상 붙여두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읽으며, 이 깨달음을 오랫동안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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