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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토요일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생각해 낸 것들이 아니라
지금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다.

요즘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
나는 바쁘게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다.
비. 바람. 나무.....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내가 봐왔던 것들은 길이 아니라 수많은 차들이었다.
버스가 나에게 준 여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
책을 읽다가 졸수도 있고....

내가 어렸을 적 가졌던 꿈들이 과연 무엇일까?
내가 어렸을 적 가졌던 고민들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비겁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생각하고
내 가정을 생각하고
나를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런 생각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이고 싶다.

2010년 6월 29일 화요일

우리는 지역 소주를 마셔야 하는 것인가?

왠만하면 우리는 지역 소주를 마셔야 하는가?
왠만하면 우리는 국산품을 애용해야 하는가?
그래 좋다.
그러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리라.

S그룹이 IT에서 잘나가고, H그룹이 자동차업계에서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왜 청년실업은 개선되지 않는가?
지역소주를 여태껏 열심히 먹어왔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돌려준 것은 무엇인가?
앞서 부산경남경마공원 이야기를 적었다.
그들의 이익중 일부분을 다시 지역민에게 돌려준다면 정말 물건을 팔듯이 돌려줘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요즘 언론에서 띄울려고 노력하는 S그룹의 스마트폰, H그룹의 자동차들은 내수용과 수출용의 품질이 다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기업활동을 하는 것인가?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앞으로 지역소주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국산품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호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못하여 국산품을 사야한다면 사회환원에 충실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현명한 소비일 것이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세상을 건너갈 징검다리

요즘 연탄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마치 스프라이즈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만큼 꾸며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주변인들은 설정되기도 했지만, 주인공은 모두 실제 인물이라고....

암튼.... 이 게시물의 제목은
연탄길 1권의 2장에 수록되어 있는 소제목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 있는
"아빠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무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아. 조금은 어리석어야 따뜻한 사림이 될 수 있거든......"

그래,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왜일까?
왜 똑똑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부자들을 보면 잘사는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부자들 중에서 잘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게 내가 봐왔던 사람들은 그들이 돈이 많은 사람이었을 뿐, 결코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값비싼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만 확보하려 할 뿐, 결코 잘 사는 사람들은 아니다.
아무리 비싼 물건을 사도 그 물건을 가진 기쁨은 1주일을 채 넘기기 힘들다.
그 기간이 지나면 수 많은 시간을 분실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밟고, 내가 잘난 사람임을 알려야 능력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모두들 승진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의 소중한 목적을 위해서 한번쯤은 소신을 버려도 되는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그 답을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상담심리 수업을 마치고

 ‘음악을 통한 자기변형’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상담심리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많은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음악을 이용하고 그 속에서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을까?

한 학기를 마친 지금에도 음악을 통해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음악공연장에 가서 공연자, 작곡가, 지휘자, 악기소리 등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라도 나에게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심지어는 최면을 걸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은 그대로 였다. 어떠한 새로운 느낌도 받지 못했고,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들은 그저 잠을 재우는 수면제였다.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서 하나는 깨달았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듯.

그러나,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배척하지 않고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수업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까?

아니라도 상관없다. 열린 마음은 아닐지라도 꽁꽁 닫아놓고 상대방을 나의 사고에 끼워 맞추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해왔던 나의 상담들 - 입은 상대를 이해한다고 해 놓고서, 상대의 말에서 허점을 찾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 - 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태풍이 불어도 풀은 쓰러질 뿐 꺾이지 않음 -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배려와 수용의 자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실습을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나의 벽들. 내가 만들어 온 수많은 벽 때문에 순수한 충고와 의견을 배척해왔다는 사실을 그래도 지금은 깨달아서 행복하다. 아니, 지금껏 나를 보호해 왔던 벽들을 제거한다는 것이 솔직히 두렵다.

머리의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가슴에 뿌리는 실천의 씨앗이다.

책상 앞에, 또 플래너 앞에 항상 붙여두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읽으며, 이 깨달음을 오랫동안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요가와 이상(李箱)의 날개

어제 같이 공부를 하는 여자분이 말한 내용이다.
그녀는 요가를 한다고 했다.
요가에서 아주 힘든 동작을 한다고 했다.
그 동작을 하면 그 고통때문에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간 동료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때 모든 생각이 사라지며, 모든 머리아픈 일들이 자신에게서 떠난다고 했다.
그때 정신이 맑아짐을 느낀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불가에서는 도를 깨닫기 위해서 참선과 고행을 한다고 한다.
참선은 잡념을 없애 도를 얻는 수련방법이고,
고행은 자신의 몸을 괴롭히며 도를 얻는 수련방법이라고 했던 듯 하다.(불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므로...)
석가모니는 참선과 고행의 방법으로 모두 수련했으나, 도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완벽한 노력을 했으므로, 더이상의 방법이 없어 그냥 보리수 나무아래에 누웠다고 한다.
그 때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가는 무위자연사상을 가진다고 했던 것 같다.(어디선가 들은.... 출처 미상)

정신....
우리는 항상 복잡한 생각을 하고, 머리속에서 수많은 계산을 한다.
잠시도 우리의 뇌는 생각을 멈출 시간이 없고, 생각의 노예로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상의 날개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내가 그 느낌을 가져볼려고 많은 시도를 했으나, 이루지 못함을 그녀는 느꼈던 것이다.
결론은 아마도 내가 가져보려고 했던 피로가 이상이 이야기했던 피로보다 훨씬 더 편안했던 모양이다.

내가 아직도 잡념이 많은 것은 나는 아직도 편안해서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는 아직 힘들지 않아서 힘들다고 생각해야 겠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입학사정관제와 봉사활동

입학사정관제에서 봉사활동을 반영하겠다고 한다.
봉사활동....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5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존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다.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어야 안전의 욕구를 갈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생리적욕구(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 번식 등)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안전의 욕구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매슬로우의 이론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댓가를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면서 봉사 그 자체를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욕구 중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 것일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봉사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입시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경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지말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굳이 자신이 한 일을 사진등의 자료를 남기는 것은

"내가 봉사활동을 많이 하였고 그 증거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다. 그래서, 나를 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선행을 알리는 것은 앞서 말한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단계나 성경의 구절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없다.


영재란 뜻의 영어단어는 gifted다.

자신의 재능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물받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봉사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순수한 의미의 봉사활동마저 입시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과학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과학고는 초·중등교육법상 과학영재교육기관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대한 조항이다.
①항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1. 기계ㆍ전기ㆍ전자ㆍ건설등 공업계열의 고등학교

2. 농업자영자 양성을 위한 농업계열의 고등학교

3. 수산자영자 양성을 위한 수산계열의 고등학교

4. 선원 양성을 위한 해양계열의 고등학교

5. 과학영재 양성을 위한 과학계열의 고등학교

6.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

7. 예술인 양성을 위한 예술계열의 고등학교

8. 체육인 양성을 위한 체육계열의 고등학교

9. 국제관계 또는 외국의 특정지역에 관한 전문인의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

라 되어 있다.


즉, 과학고등학교의 정체성은 과학영재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고등학교인 것이다.

그러면, 영재학교는 무엇인가?

영재학교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제19조에 근거하여 지정되고 있다.

제19조 (영재학교의 지정) ①국·공·사립의 고등학교중 영재학교로 지정받고자 하는 학교의 장은 다음 각호의 사항이 포함된 지정신청서에 당해 교육감의 추천서(국립의 고등학교를 제외한다)를 첨부하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개정 2008.2.29>


교원의 배치를 살펴보자.

과학고등학교의 교원 배치는 초중등교육법 제 35조에 의거하여 배치되고 있다.

제35조 (고등학교 교원의 배치기준) ①법 제19조의 규정에 의하여 고등학교에는 교장ㆍ교감외에 3학급까지는 학급마다 교사 3인을, 3학급을 초과할 때에는 1학급이 증가할 때마다 2인이상의 비율로 이를 더 배치한다.

②고등학교에는 제1항의 교사외에 3학급마다 1인이상의 실업과 담당교사를 더 둔다.

③고등학교에는 제1항 및 제2항의 교사외에 실기교사ㆍ보건교사ㆍ전문상담교사 및 사서교사를 둘 수 있다. <개정 2004.2.17>


영재학교의 교원 배치는 영재교육진흥법 제29조에 의거하여 배치되고 있다.

제29조 (영재교육기관에 두는 교원의 배치기준) ①영재학교에는 다음 각호의 기준에 따라 교원을 배치하여야 한다.

1. 교장 및 교감 각 1인

2. 학생 10인당 교사 1인 이상

3. 전문상담교사 및 사서교사 각 1인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과학고는 과연 영재교육기관인지 의문스럽다.

기초과학분야의 우수한 인재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학고역시 초중등교육법이 아니라 영재교육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